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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로 사라지는 골목 이름은 단순한 주소가 아닌 지역의 기억과 정체성입니다. 생활 골목의 이름이 지워질 때, 그 안의 이야기도 사라집니다. 우리는 이 소중한 지역 자산을 어떻게 남기고 지켜야 할까요?
골목 이름의 의미와 중요성
골목 이름은 단순히 길을 구분하기 위한 표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역 주민들의 삶과 역사가 담긴 '생활 지명'이자, 공동체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이름입니다. 예를 들어, '빨래터골목', '대장간골목', '장터길' 같은 이름은 단어 하나만으로도 그 골목에서 오랫동안 이어져온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서울 종로구에는 ‘우물터길’이라는 이름의 골목이 있습니다. 이 이름은 과거 공동 우물이 있던 자리를 의미하며, 현재는 그 우물이 사라졌지만 이름만은 남아 과거의 생활 흔적을 상기시켜 줍니다. 이러한 이름은 그 자체로 역사의 증거입니다.
언어학자 김소라 교수는 “골목 이름은 특정 시기, 특정 공동체의 문화적 특성과 집단 기억이 응축된 언어 형태”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특정 골목의 이름을 통해 그 지역이 어업, 시장, 공방 등 어떤 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했는지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름의 힘은 외부인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관광객이나 방문객은 특이하거나 인상적인 골목 이름을 통해 해당 지역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그것이 지역 브랜딩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일본의 ‘산넨자카’, 프랑스의 ‘몽마르뜨 언덕길’처럼 말이죠.
이처럼 골목 이름은 단순한 지명의 범주를 넘어, 지역사회의 유산이자 문화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보존과 기록이 필요한 이유는 충분합니다.
재개발로 인한 골목 이름의 소멸
도시는 계속해서 진화합니다. 낡은 주택과 골목은 현대식 아파트와 도로로 대체되며, 더 나은 생활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개발이 진행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골목 이름이 사라지는 현상은 피할 수 없습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사례를 보면, 재개발 전 '율현골목', '개나리길' 등 지역 주민들에게 익숙했던 골목 이름들이 사라지고, 대신 ‘개포래미안’과 같은 단지명만 남았습니다. 지도상에서도 기존 골목 구조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0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 재개발 지역 중 65% 이상이 기존 지명·골목 이름을 유지하지 않고 새로운 단지명 중심으로 변경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지역 정체성의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골목 이름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골목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함께 지워진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고령 주민의 경우, 오랜 세월을 함께한 공간이 갑자기 ‘블록 B구역 104동’ 같은 숫자와 단지명으로만 불릴 때 깊은 박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공동체 연결망의 약화로도 이어집니다. 주민들이 “이웃은 잊어도 골목 이름은 기억한다”라고 말하듯, 이름은 공동체의 일상 언어였습니다. 그 언어가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공동체 의식도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골목 이름 보존을 위한 국내외 사례
다행히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골목 이름을 보존하려는 시도들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2022년 ‘생활사 골목길 이름 찾기’ 시범사업을 실시해 종로구, 성북구 등지에 주민 제안형 골목 이름을 부활시키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 사업은 기존 행정 중심의 일률적인 명명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 주민의 기억과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름을 복원하거나 새로 정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예를 들어 ‘정미소골목’, ‘할머니밥상길’과 같은 이름들이 그 결과로 태어났습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있습니다. 일본 도쿄의 시타마치 지역은 오래된 골목 이름을 철저히 보존하고 있으며, 그 유래와 설명을 담은 안내판과 디지털 지도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역 관광자원으로도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영국 런던은 ‘로컬 레인스(Local Lanes)’ 프로젝트를 통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골목 이름과 유래를 기록하는 시민 아카이빙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역사적 이름을 디지털 지도 서비스에 다시 반영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이렇듯 국내외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골목 이름 보존은 단순한 감성이 아닌 도시 문화유산 관리의 실질적인 방식으로 접근되고 있습니다.
지역 정체성 유지를 위한 정책 제안
골목 이름의 소멸을 막고 지역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책적 접근이 필수적입니다.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 행정 계획과 도시 설계 단계에서부터 이름 보존이 반영되어야 합니다.
첫째, 지자체의 도시재생 및 재개발 사업에 ‘기존 골목 이름 보존’ 항목을 의무적으로 포함하는 조례 제정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에서는 ‘문화자산 보존 조례’를 통해 유사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둘째, 주민 참여 기반의 골목 이름 보존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우리 동네 이름 찾기’ 프로젝트, 구술 채록, 마을 지도 제작 등이 좋은 예입니다. 이 과정에서 주민이 직접 자신의 골목을 명명하면 그만큼 애착도 강해집니다.
셋째, 디지털 기반의 아카이브 구축도 중요합니다. ‘지도 기반 스토리 플랫폼’, ‘QR 골목 명판’ 등 기술과 연계한 콘텐츠는 젊은 세대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식입니다.
넷째, 골목 이름을 문화콘텐츠로 재해석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역 축제, 골목 이야기 전시, 지역 캐릭터 개발 등으로 확장한다면, 골목 이름은 단순한 지명을 넘어 살아있는 문화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결론 및 제언
재개발은 도시 발전을 위한 필수 과정이지만, 그 속에서 사라지는 지역의 기억까지 잊어서는 안 됩니다. 골목 이름은 공간에 새겨진 이야기이며, 공동체가 공유하는 언어이자 역사입니다.
이름을 보존하는 것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자, 미래를 위한 정체성의 기반을 다지는 일입니다. 정책, 기술, 공동체 참여가 어우러질 때, 우리는 비로소 사라진 골목 이름들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지역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기록해 나간다면, ‘사라진 골목’은 ‘기억되는 골목’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FAQ)
Q1. 골목 이름은 누가 정하나요?
과거에는 자연스럽게 주민들 사이에서 정해졌고, 현재는 지자체나 주민 참여 방식으로 정식 명명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Q2. 재개발이 되면 골목 이름은 반드시 사라지나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지자체 정책이나 주민 요구에 따라 기존 이름을 유지하거나 복원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Q3. 옛 골목 이름을 어떻게 기록할 수 있나요?
주민 구술 채록, 마을 아카이브 프로젝트, 옛 지도 복원 등을 통해 이름을 수집하고 기록할 수 있습니다.
Q4. 골목 이름 보존을 위한 시민 활동에는 어떤 게 있나요?
‘골목 이름 찾기 프로젝트’, ‘우리 동네 지도 만들기’, ‘구술기록 봉사단’ 등의 시민 참여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Q5. 골목 이름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한 사례가 있나요?
일본 도쿄의 시타마치, 프랑스 리옹 구시가지 등은 전통 골목 이름을 스토리텔링 콘텐츠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Q6. 디지털로 골목 이름을 보존하는 방법도 있나요?
웹 아카이브, QR 명판, GPS 기반 스토리 앱 등을 활용해 모바일과 웹에서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Q7. 사라진 골목 이름을 다음 세대에 어떻게 전달하나요?
교육 프로그램, 마을박물관, 영상 콘텐츠 등을 통해 청소년과 어린이에게 전하는 방식이 활발히 시도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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